[인터뷰] 31살 한국의 주커버그, 어떻게 젊은이들 손가락을 유혹했나…위자드웍스 표철민 대표 ①

    입력 : 2015.03.02 10:44

    "수줍음이 엄청 많은 소년이었다. 공부는 반에서 5~6등 정도, 특출날 게 하나 없었다. 부모님이 맞벌이시라 컴퓨터를 원 없이 할 수 있었는데, 우연히 시작한 도메인 사업이 나중엔 아버지보다 더 벌게 되더라."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했던가. 15살에 최연소 CEO가 된 표철민 대표는 16살에는 연매출 1억 달성, 대학생 땐 국내 최초로 위젯을 대중화시켰으며 지금은 IT업체 위자드웍스의 대표이사가 됐다. 그의 회사에서 서비스 중인 앱 '테마키보드'는 사용자가 650만 명에 달한다. '특출날 게 없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화려한 이력. 이 31살의 젊은 사장님을 보자 부러움과 동시에 약간 샘이 났다. 성공가도를 달려온 것만 같은 그에게 실패의 경험을 먼저 물어보기로 했다.

    #1  "10년간 애송이 취급…난 성공한 적이 별로 없었다"

    Q. 가장 큰 좌절을 맛봤던 때가 언젠가?

    - 첫째는 위젯업계 1위가 됐을 때. 내가 오만했던 탓인지, 내부 갈등이 심했고 개발자들이 한꺼번에 다 나가 별도의 회사를 세웠다. 사세도 위축되고 심적으로 매우 힘들었다. 둘째는 위자드웍스에서 100% 자회사로 만든 소셜게임 개발사 루비콘게임즈 사업을 접었을 때다. 이것을 정리하고 3개월 후에 카카오 게임이 터지며 소셜게임 개발사들이 돈방석에 앉더라. 마지막으로 회사에 돈이 떨어진 최근 2년간의 일인데, 직원들과 그들 가족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면서 사장으로서 누구보다 큰 죄책감을 느꼈다.

    Q. 그 동안 개인화 포털 사이트, 위젯, 클라우드 서비스 등 다양한 사업을 했는데 이것들이 수익이 잘 안 났다는 얘긴가?

    - 위젯 사업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깝다. 하루 1,400만명이 사용하는 한국 전체 10위권 사이트가 됐음에도 이를 수익으로 연결시키지 못해 서비스를 접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솜노트를 만들 때도 똑같은 실수를 했다. 사용자가 많으면 저절로 수익이 날거라 착각했던 거다. 덕분에 고생을 많이 했다. 우리가 서비스 만드는 것은 잘해도 수익화에 대한 경험은 턱없이 부족했다.

    Q. 젊은 사업가로서 회사를 이끌어가는 데 고충도 있을 것 같다. 얕보는 시선을 많이 느꼈을 텐데.

    - 한 10년간은 애송이 취급을 받았다. 하도 당해서 이제는 아무렇지 않지만, 처음에는 한 명씩 만나서 설득시키고 믿음을 사는 게 큰 고충이었다. 그런데 쓰는 말투부터 용어, 시장과 제품을 분석하는 통찰력 등을 차근히 보여주기 시작하니까 상대방 눈빛이 달라지더라. 어린 사장들에게 '실력이 있으면 나이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만약 여전히 나이를 신경 쓰고 있다면 냉정히 말해 실력이나 성과가 없는 것이다.

    Q. 비슷한 또래의 직원들을 대하는 건 어떤가? 본인이 직원으로서 회사 생활을 해보지 못해서 더 힘들었을 것 같다.

    - 예전엔 직원 어깨 툭툭 치며 "고생이 많아"라고 격려해주는 게 소원이었다. 그런데 7~8살 많은 직원들과 생활하다보니 이게 행동으로 안 나오더라. 버르장머리 없다고 생각하면 어쩌나. 지금은 후배들과 일하니까 직원들 어깨도 쳐 주고 전보다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더 잘 맞는 옷을 입고 사업하는 기분이랄까. 사장이라고 항상 갑인 것은 절대 아니다. 모셔야 할 주주들과 챙겨야 할 직원들이 있기에 위아래 좌우로 늘 눈치를 살핀다. 난 사장만 오래하다 보니 눈치가 백단이다.

    #2  9년간 홀로 지킨 위자드웍스…"버티니까 되더라"

    수많은 실패의 경험은 수줍음 많던 소년의 모습도 바꿔놓았다. 시련은 각각 달랐지만 그가 말하는 극복 방법은 단 하나. 그저 버티라는 거다. 표철민 대표는 "도망가지 않고 견디다 보면 또 다른 기회가 오고 실패의 고통도 더 잘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다. 위자드웍스의 창업 멤버가 모두 떠났을 때도 그는 홀로 남아 9년간 회사를 지켜왔다.

    Q. 대학교 창업센터에서 탄생한 위자드웍스가 내년이면 10주년이다. 그런데 창업 멤버 6명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특별한 사연이 있었나?

    - 다들 학생이다 보니 졸업 문제, 군대 문제 등으로 회사를 떠났다. 회계사로 로스쿨로 대기업으로…. 현재 e-북 만드는 '리디북스'의 남현우 CTO와 김현철 개발팀장, 무료라디오 앱 '비트'를 디자인 한 배재민 CDO 역시 우리 회사의 창업 멤버였다. 나 빼고 다들 잘 됐다.(웃음)

    Q. 창업을 한다고 했을 때 가족과 친구들의 반응은 어땠나? 응원하던 쪽이었는지 말리던 쪽이었는지 궁금하다.

    - 가족들은 내가 사업하는 15년 내내 걱정이 많았다. 전에 없던 많은 빚과 연대보증을 지고, 많은 직원들을 책임져야 하니 그럴 만도 하다. 친구들은 대부분 응원을 해줬지만 (과가 달라)일하는 분야가 다르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 내 특수한 상황을 나눌 동료가 없었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는 사업을 하면서 외로움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Q. 그러고 보니 신문방송학과와 경영학을 전공했더라.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다면서 왜 관련 학과로 진학하지 않았나?

    - 중·고등학교 때는 방송반, 대학교 때도 교내 방송국 아나운서를 했다. 동아리도 방송반, 발명반, 국제기구반 등 무려 6개를 했다. 이제 와 생각하면 내가 조금이나마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가졌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지금은 주위에 공대 출신이 가장 많고 매일 IT 얘기만 나누니까. IT에만 매몰되면 큰 사고를 못하지 않나. 그래서 일부러 예술 하는 사람도 만나고 금융 하는 사람도 만나려고 한다. 본업은 집중, 관심은 다방면이라야 본업도 잘 할 수 있다는 게 내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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